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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

''어른 김장하" – 조용한 기부로 남긴 유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

by 김에미 2025. 5. 1.

“내가 가진 것은 사회에서 빌린 것이다. 이제 돌려줘야 할 때다.”

이 말 한마디로 설명되는 삶이 있다면, 아마도 김장하 선생님일 것입니다. 이름보다 그의 철학이, 얼굴보다 그의 행동이 먼저 기억되는 사람. ‘어른 김장하’는 진짜 어른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입니다.

 

1. 머슴살이에서 백억 기부까지 – 한 사람의 뿌리 깊은 삶

1944년 경상남도 사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김장하 선생님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동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한약방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에게 고등학교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삶을 배우는 학교는 어디서든 열려 있었습니다.

1962년, 한약업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그는 1963년 자신의 이름을 건 ‘남성당한약방’을 열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후 20여 년간의 절약과 노력 끝에, 1983년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학교 운영 8년 만인 1991년, 그는 사재 100억 원 규모의 학교를 국가에 헌납합니다.

“학교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것입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그 어떤 설명보다 큰 울림을 줍니다.


2. 드러내지 않은 손 – 조용한 기부, 겸손한 울림

김장하 선생은 평생을 통틀어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기부자’였습니다. 명신고 설립 이후에도 그는 진주 지역 문화예술, 시민사회, 인권, 환경 단체를 끊임없이 후원해왔습니다. 2000년에 설립한 남성문화재단은 2021년 해산되었고, 그 잔여재산 약 35억 원 전액을 경상국립대학교 발전기금으로 기탁하며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사회에 되돌렸습니다.

“돈은 똥, 쌓아 두면 냄새나지만 흩으면 꽃이 핀다.”

그의 어록은 명쾌합니다.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아도, 그의 행보 자체가 사회를 움직였습니다.


2-1. 김장하 장학금으로 성장한 한 사람 – 헌법재판소 재판관 문형배와의 일화

김장하 선생님의 조용한 기부는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입니다. 그는 2019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때 김장하 선생님을 만났다"며, "대학교를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제게 항상 ‘너도 언젠가 받은 것을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갚는다면 나에게 갚지 말고,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짧은 증언은 김장하 선생의 기부가 단순한 경제적 후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동력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빛이 비추는 방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그는 수많은 사람의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3. 우리가 본받아야 할 김장하 정신 세 가지

📍 첫째, ‘빌린 것을 갚는다’는 태도

김장하 선생은 모든 재산을 사회에 ‘빌려 쓰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돌려주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 겸손한 철학은 그가 결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더 빛납니다.

📍 둘째, 침묵 속 실천

그는 어떤 홍보도, 보도자료도 없이 학교를 짓고 기부를 이어갔습니다. 생존해 있는 동안 받은 훈장은 국민훈장 모란장 하나뿐이었으며, 언론 인터뷰조차 거의 없습니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을 입에 담지 않지만, 그의 삶 자체가 그 말의 정의입니다.

📍 셋째, 교육과 공동체를 향한 헌신

명신고, 진주신문, 책마을, 극단현장, 형평운동기념회… 그가 손길을 내민 모든 곳은 ‘사람을 키우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늘 사람과 지역, 교육을 함께 바라봤습니다.


4. 마무리하며 – 어른 한 사람이 남긴 유산

어른은 없고 꼰대만 남은 시대에, 우리는 진짜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물음에서였습니다.

경남 진주의 작은 한약방, 그곳에서 60년 동안 조용히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를 말해줍니다.

2022년,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방영되었습니다. 인터뷰 한 번 없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옷 한 벌도 허투루 사지 않으며 수많은 사람을 도운 인물. 이 영화는 “좋은 어른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꼭 전해져야 할 이야기입니다.

(감독 김현지, 구성 김주완 – 유튜브 영화 채널에서 관람 가능)

2022년에는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방영되었습니다. 관객들은 말합니다. “왜 이제야 이분을 알게 되었을까.” 그러나 김장하 선생님이라면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를 아는 것보다, 나의 뜻을 이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우리가 진짜 어른의 기준을 잃어가는 시대에, ‘어른 김장하’라는 이름은 단지 한 사람을 넘어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묵묵히 일하고, 조용히 건네며, 끝까지 책임지는 삶. 우리는 오늘, 그런 어른을 다시 기억합니다.